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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르띠나 수녀 등록일: 2013-05-14 14:08:41 댓글: '1' ,  조회 수: '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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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루의 많은 10대 소녀들은 여성이 되기도 전에 먼저 “엄마”가 된다.

그러나 이들에겐 한국식 표현 같은 “미혼모”, “10대 엄마”라는 이름표는 붙지 않는다. 아이로 인해 자신의 삶이 조금 빨리 엄마와 할머니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 안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그녀의 엄마가 16세에 그녀를 낳았고, 할머니가 그녀의 엄마를 16세 때 낳았다. 이처럼 집안의 어른들이 자신에 앞서 이 길을 먼저 갔고 그리곤 롤 모델이 되어 살고 있다. 그리고 주변의 많은 이웃들도 이리 살기에 이곳의 어린 엄마들은 자신이 보편적 삶의 형태에 승선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혼례”를 통해 부부가 되고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는 것이 아닌 아이가 생김으로 인해 대책 없이 엄마 아빠가 되고 남편과 아내가 되기에 많은 문제(내 한국적 시각에)들이 뒤따른다.

 

어려울 때 이것저것 의논도하고 도움을 받았던 산마을 친구인 마리의 일이 계속 내 마음을 쓰이게 한다. 마리는 우리 공부방이 있는 산마을에서 똑똑한 엄마 중에 한사람이고 아이들 학교에 학부모 회장이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산길을 급히 내려오는 나를 잡고는,

“에르마나(수녀님), 남편이 집을 떠났어요!”하며 다른 부인 쪽으로 간 남편 얘기를 하며 울기 시작했다. 앞으로 아이들 둘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리는 남편이 떠남으로 인해 당장 의식주에 큰 문제가 닥쳤음을 호소하며 두려움과 슬픔을 토해낸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아는지라 그녀가 안쓰러웠다. 아이들의 의식주 해결을 위해서 그 남편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를 잡고 있어야 했던 마리였다. 이런 남편이 그녀를 떠났으니 당장 내일 먹을 끼니가 걱정인건 당연한 것이다.

한편 내 속에선 “그 인간이 무슨 남편이야, 결혼도 안 했는데 같이 살면 다 남편이냐!”하는 소리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이 비탄을 들으며 뭔지 모르게 내 안에 힘이 소진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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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마을 엄마들의 삶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두 세집 살림을 하는 성실하지 못한 남편에게 의존해서 산다.

이 엄마들 또한 전 남편이라 칭하는 성이 다른 아이들의 아빠들과 살았던 지난 시간이 있다. 이것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전수되는 유전과 같은 가족현황이다.

이러다 보니 이런 환경에서 사는 공부방 아이들에게 책임감과 성실성 등 가족관련 교육이나 종교교육을 할 때면 정말 막막함이 느껴진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섣불리 내가 믿는 가치와 공동선을 언급함으로 아이들 부모의 삶이 조금이라도 비판과 단죄되는 말실수를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산마을의 엄마들은 요한복음서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을 연상시킨다. 이 여인처럼 아이들 엄마들도 남편이 여럿이 있었지만 어느 이도 제대로 된 남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엄마들은 남편을 여럿 걸치며 살 수밖에 없는 사연들이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부끄러워할 일도 또 이것이 남들의 입소문으로 돌 뉴스거리도 아니다. 아이들 역시 오빠 언니들과 성이 다 다르다 해서 이것을 흉처럼 생각 않는다.

 

달포전 11살된 자넷이 나를 찾아와선 당돌하게 도움을 청하며 하는 말,

“언니와 저는 같은 아빤데 우리 아빤 아주 멀리 살고 있고요, 아무것도 안 도와주세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분은 Padrastro(계부)인데 동생들 아빠라 언니와 저한테는 마음 안 쓰세요.”하지 않는가.

사실 자넷의 바로 밑에 동생도 아빠가 따로 있다.

자넷의 엄마도 남편이 셋이였다는 얘기다.

문제는 사실혼(한국적 표현)으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해도 남편은 자기 핏줄인 아이들에게만 책임을 지려고 하고 그나마 이거라도 하면 다행이다. 그 책임이라고 해야 하루에 필요한 양식을 제공하는 것이 다인데 이런 차별로 인해 같이 살고 있는 다른 핏줄의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다.

이것이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요인이고 공부방 아이들의 부모와 관련해서 내게 인내를 요구하는 부분이다.

 

“안지, 아침 먹었니?” 안지는 학교가 오후반이라 아침이면 어김없이 공부방에 오는 아이다.

“.......”, “오늘도 못 먹었어?”

하루는 아침을 못 먹는 상황에 관해서 설명을 해달라고 하니... 기절할 일이었다.

안지의 빠드라스뜨로(계부)가 매일 2솔(페루 화페 단위로 천원이 안되는 돈)을 엄마한테 주는데 이 2솔로 엄마를 포함해 6명이 아침과 점심, 저녁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믿을 수없는 말이었다. 마을 공동식당 한 끼가 1.5솔인데... 안지 뿐만 아니라 당신 핏줄 아이들조차 굶기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건 엄마가 기분을 나쁘게 하면 그 2솔조차도 안준다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이 비슷한 가족 환경에서 자란다. 안지네처럼 심한 경우는 드물지만 불안정한 부모의 관계로 인해 아이들은 이렇게 늘 배가 고프다. 교육의 근본인 가정이 부모의 정체성 결려와 왜곡(나의 관점이겠지만)된 부모역할로 아이들만 희생당하며 부모들의 병적인 그림자를 고스란히 받아 앉는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이게 욕심인지... 혼자 독백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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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역사와 정신문화 안에 “성(性)”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정착되어 있는지 그 뿌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문화 안에 담고 있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성인식, 성역할, 결혼제도, 등등 이런 것이 현재의 가족구도를 만든 근간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교육에서 선행적으로 다루어져야 지금의 가계(家系)도에 대한 이해와 개선의 여지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나의 유교적 정신문화가 “부모 역할”에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이 어떻든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겐 “엄마 아빠가 그들의 세상이다.” 이세상이 어두우니 이 아이들이 얼마나 어둡고 괴롭겠는가... 이 또한 나의 관점일 뿐일까?

 

그래도 우리 산마을의 "페루 엄마"들은 아이들에겐 절대적 세상이며 유일한 안전지대로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엄마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낸다.

아버지들은 부초같이 떠돌며 자녀에게 “버림과 방임”을 유산으로 남기지만 엄마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보듬으며 안전지대가 되어준다. 그들의 엄마와 그 위의 할머니가 같은 가난 속에서도 그들의 자녀들을 지켜냈듯이 말이다.

60, 70년대의 한국, 아니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고 이를 선택하는 엄마들이 있는데 이런 형태의 부모역할은 여기 페루에선 본적이 없다.

같은 여성으로써 처음엔 산마을의 엄마들이 “바보같은 여자들로”보이며 미래가 안 보이는 그들의 삶이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러나 이젠 숙연한 놀라움과 존경만이 느껴진다.

 

뜰 앞에 나아 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16세 엄마가 지천명에 든 나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내 삶을 모르 듯 나 또한 그녀의 삶을 모르는데 무슨 권한으로 "어린엄마"를 운운하리오.

"마르띠나, 나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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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띠나 수녀님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소식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