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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r.Columban 등록일: 2013-04-11 18:54:51 댓글: '0' ,  조회 수: '2140'

이글은 페루선교중인 마르띠나 수녀님의 글입니다.

(답글로 수녀님을 응원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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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페루에 도착한 날이 생각난다.
오랜 시간 건조한 비행기 여행 탓인지 수녀원에 들어오자마자 찾은 것이 시원한 물 한잔이었다.
큰 컵 가득히 물을 건네받아 한 모금 삼키는 순간, 욱, 하며 삼킨 물이 토할 듯이 다시 입안으로 넘어온다. “아니, 이런 물을 마시며 살아야 하다니...” 불쾌하고 반갑지 않은 페루에 대한 첫 느낌이었다. 이는 마치 잘 못 끼워진 첫 단추같이 이후의 고단한 적응생활에 그림자로 작용했다.
  
페루에서의 첫 해 동안 자주 했던 말이 “페루는 정말 문화가 다르다”였다. 어쩌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적 요소를 지적하면 할머니 수녀님들은 일장 연설로 내 이해를 도우려했고 이럴 때마다  내 인간적인 어려움보다 나의 페루에 대한 몰이해에 초점을 두고 가르치듯 강론을 하는 수녀님들한테 짜증이 올라왔다. 급기야는 이런 수녀님들을 향해 “지금 내가 필요한건 ‘페루 문화가 뭔가?’라는 강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문화충격으로 Struggling(좌충우돌)하고 있는 나를 그냥 받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화를 낸 적이 있다. 이렇게 페루문화는 내 한국적 정서로 적응하기엔 시간이 필요했다.

페루는 내게 첫 선교지가 아니다. 이곳에 오기 전 이미 다른 선교지 와 여러 나라를 걸치며 다양한 문화와 풍습, 가치들을 접하는데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페루가 지닌 고유한 문화와 풍습은 내가 지닌 가치기준, 종교, 믿음, 윤리 개념 등등 내 정신세계를 향한 총체적 물갈이를 요구하듯 많은 것들 안에서 당황스러운 “다름의 갈등”이 시작됐다. 새로움과 긍정적 시선 보다는 이상함과 황당함 들이 눈에 읽혀졌다. 페루에 대한 나의 이런 부정적 태도에 자못 마음이 불편해 억지다 싶게 그 원인을 찾아 말도 안 되게 “물맛이 준 그 부정적 바이러스 탓이야” 하며 궁색하게 물맛 탓을 하기도 했다.

20대에 페루로 발령을 받아 나왔다면 이런 다름 들이 신기하고 새로운 힘의 원동력이 되는 시간이었을 텐데 불혹을 훌쩍 넘어서 들어오니 내 안에 고착된 내 고유의 삶의 방식들이 이곳의 흐름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그리곤 이곳에서 살기위해선 선행적으로 나의 것들이 먼저 해체되어져야 하는 고통스러운 고된 적응의 시간을 통과해야했다. 내가 배웠고, 알고, 믿었던 것들이 이곳에 적용 불가능에 아무런 의미부여가 안 되는 것을 경험하는 아픈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얼마 전 공부방에 아이들 옷을 파는 보따리 장사꾼이 들어와 아이들 옷을 사라고 회의 중인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반응을 안하면 계속 소리를 질러 댈 듯싶어 “No quiero comprar, no  necesito! senor (안사요, 필요 없습니다! 아저씨)"라고 말했다. 이 장사꾼이 다른 선생님 둘을 향해 계속 옷을 흔들어대니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대답, “Todavia, senor!”(아직이요, 아저씨)하지 않는가.  “아니, Todavia(아직)라니?”하며 물으니, 내 반응에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하는 말, “페루사람들은 수녀님처럼 대답하지 않아요.”하며, 그게 안 산다는 의미란다. 이렇게 자기의 명확한 개인의견 없이 상황 상황을 넘기는 식의 표현들을 일상에서 많이 접하게 된다. 이런 표현들이 어떤 면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부드러운 표현방법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일과 관련해서는 이런 태도에 혈압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난 직원들한테 그들의 의견을 요구하고, 이들은 자기 의견 없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난 “예, 아니오”를 듣고 싶어 하고 그들은 "No lo se!"(모르겠는데요)로 피해 갈려고 한다. No로 대답해야 할 일에 눈치 보며 Si(예)로 대답을 한 후 감당이 안 되는 사고를 칠 때도 많다. 정말 인내가 필요하다. 이 공부방에서 일하고 싶으면 No하는 것부터 배우라고 협박씩 조언을 했지만 직원들에 앞서 내가 “Todavia!"를 쓸 듯 싶다. 내가 이런 표현 문화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간간이 “다름이란,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곤 했다. 논리적 정의를 넘어 외국 문화에 살며 “이 곳이 내 살 곳이다”라고 사는 나에겐 “다름”은 내가 이곳에 없었기 때문에서 오는 “삶 부재”에 대한 주관적 해석으로 생각되어진다. 상대적이든 주관적이든 끊임없이 “다름”으로 읽혀지는 현상들은 많은 경우 개인적인 잣대의 비판과 불평이 따르게 된다. 문화가 지닌 독특함 내지는 취약한 요소들을 깊이 보려는 의지대신 내 것을 죈 채 이것이 중심이 된 “다름”에 고착되어 혼자 독야청청 “나 홀로 선교사”로 살아가는 선배 선교사들을 봐왔다. 나 역시 이미 이 길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시나브로 이곳의 흐름들에 많이 동화되었는지 “우리 정서”라는 단어가 이젠 좀 막연하고 낯설게도 느껴지니 한편 반갑기도 하고 내가 페루화 되어 가는듯한 싸인으로 생각되어 기분이 좋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이 내 고유한 문화에서 온 내 정서와 원칙, 가치, 믿음 등들과 부딪치는 일상안의 페루 문화적 요소들에 어려움을 느낀다. 어쩌면 이곳에 살고 있는 한 같이 안고 가야할 것일 게다. 설사 내 것이 더 나은 길이고 효율적이라 해도 장구한 역사 속에서 형성된 페루의 문화적 요소들에 전폭적으로 먼저 내 것을 내려놓고 이 안으로 들어가야 함을 본다. 왜냐하면 이 오랜 굴곡진 역사 안에 하느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어느 시기가 지나니 직면하는 다름 들도 다양하고 비판과 불평의 반응들도 사라졌다. 대신 “문화에 도전”아니면 “문화에 편승”이라는 단어가 내안에서 이슈화됐다. 이분법적 표현이긴 하지만 이 둘은 내게 주어진 쉽지 않은 숙제다. 지나치게 도전적이면 문화를 이해 못하는 비판적 이방인이 될 것이고, 무조건 편승적이면 선교사로써 정체성에 회의감 내지는 어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도전적이든 편승적이든 여기엔 어떤 특정 매뉴얼도 없다 나의 선택에 달렸을 뿐이다. 도전적이었다 해서 페루가 변화되는 것도, 편승한다 해서 내 선교사의 삶에 큰 해가 가는 것도 아니지만 도전과 편승은 크든 작든 일상 안에서 늘 접하는 쉽지 않은, 그래서 지혜롭게 해야 할 나의 실행과제이다.  

페루에 온지 1년 후에 한국인 후배 수녀가 발령받아왔다. 긴 비행기 여행에 목이 말랐는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수녀원에 도착하자마자 물부터 찾는다. 내 손으로 큰 컵으로 물 한잔 건네자 단숨에 들이키며 하는 말 “와, 물 맛 좋네!” 같은 물이었다, 내가 마셨을 때 토할 것 같았던 그 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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